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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우의 인생책 리스트

정세현의 통찰

by 귀찬우 2023.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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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을 꿈꾸며 외교학과에 진학했지만, 통일 문제로 관심이 옮겨 갔다. 통일은 단순히 남북을 합치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정치적인 맥락에서 풀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국제정치라는 게 조폭의 세계와 같다고 생각한다. 조폭들은 보통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믿는다. 폭력을 사용할 때 핑계나 명분은 나중에 만들고 먼저 행동부터 한다. 또한 자기 조직의 ‘영역’을 침범하는 뜨내기 깡패들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그 뜨내기 깡패들에게 배후가 있을 경우에는 더 극렬하게 저항을 하거나 반격한다.

러시아의 이런 야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우크라이나를 친 걸까?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힘이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니까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친 거다. 푸틴 대통령은 국제정치 판세를 읽는 것이 몸에 밴 사람이다.

미국은 최근 중국을 억누르려고 한다. 제 2차세계대전 이후 동아시아 지역에서 구축해 놓은 절대적인 지위, 헤게모니가 흔들린다는 판단하에 중국을 포위해 들어가고 있는데, 여기에 한국, 일본 등 여러 동아시아 국가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바로 이런 사실이 미국의 힘이 빠지고 있다는 증거다.

미국은 중국 견제에 많은 힘을 쏟아야 하고 북핵 문제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따라서 가진 힘 가운데 60~70퍼센트는 동아시아에 쓰고 있는 셈이고 남은 힘이 30~40퍼센트밖에 안된다. 러시아의 힘은 물론 미국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지리적으로 러시아에 가깝고, 미국은 멀이 있으니 좀 밀어붙여도 간섭하는 데 한계가 있을 테고, 우크라이나 전체는 아니더라도 흑해로 나가는 통로로 돈바스 지역쯤은 잘하면 확보할 수 있을거라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어떤 나라는 빼앗고 어떤 나라는 빼앗긴다. 어떤 나라는 세계를 움직이고 어떤 나라는 휘둘린다. 한 나라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를 파고들어 가기 전에 먼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그 나라들을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이야기해보자.

권력이란 그런 거다. 골목대장들의 세계가 커지면 국가인데, 국민에게 행사하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명분들을 만들어 내는 국가권력자가 바로 정치인이다.

이렇듯 명분은 무력 사용을 정당화하는 데 쓰였고 무력 없이 명분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국제정치의 세계다. 협상하겠다며 위협하면 그건 굴복시키겠다는 말이다.

우리는 현재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받아들여 그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중심은 늘 움직였다. 앞으로 우리 외교가 지향해야 할 바를 제대로 찾기 위해서는 어떤 국제질서 속에서 살았는지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이해하고 성찰해야 한다.

일본이 미국에 굴종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일본 사람들은 미국 유학은 잘 가지 않는다. 자기들끼리도 잘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일본은 언젠가 미국의 힘이 떨어지면 중국과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여전히 성장 중이고 미국은 이미 저성장으로 가고 있는 것을 일본도 보고 있으니까

큰 욕심으로 미국과 전쟁을 벌여 팍스 자포니카의 꿈이 좌절된 것에 대한 반성이기도 할 텐데, 일본의 계산은 아마 이럴 것이다. 다시 아시아의 주인이 되려면 그때처럼 해서는 안되고, 일단 미국의 등에 업혀 국력을 유지해 나가면서 정상 국가가 돼야 한다. 정상 국가가 되도록 밀어줄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고 그러니 철저하게 미국 편에 서서 미국 입맛대로 놀아야 한다. 일단 중국을 견제하고 싶어 하는 미국을 이용해 중국의 힘을 빼고, 그러다 미국의 힘이 빠지면 후게자가 돼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나라가 될 생각인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미국에 찰싹 붙을 수 있는 것은 우리와 달리 중국과 거리가 있어서다. 또, 일본은 한때 이기려고 했던 중국 밑으론 자존심 때문에 못 간다.

잘살게만 해주면 독재도 좋고 독재하는 대통령도 존경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독재정권은 상징 조작, 선전 선동을 이용해 애국심을 통치자에 대한 존경심으로 연결시켰다. 잘사는 집의 자식들은 뿔뿔이 놀지만 못 사는 집 가족들은 단결력이 더 강하지 않나. 애국심도 결국은 집단주의다. 그런데 우리의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애국주의가 많이 옅어졌다.

미국과 중국이 힘겨루기를 시작한 2010년부터 경제력에서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부국강병의 원리에 따라 중국의 군사력도 더 강화될 것이다. 그동안 미국이 태평양 사령부, 주일미군, 주한미군으로 동아시아를 호령했는데 중국한테 위협을 받게 된 상황에서 군사적으로 대비를 안 할 수는 없고 그래서 불가피하게 한국에 사드를 배치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정권 교체가 되면 권력자가 친한 정치인들을 아무데나 박아버리는 바람에 정확한 문제 해결책을 찾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이념 논쟁을 할지라도 특히 정책을 세우는 장관, 차관이나 청와대 수석들은 그런 논쟁에 사로잡히지 말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일본에 대한 미움 때문에 작은 나라로 보지만 사실 일본은 큰 나라다. 인구수는 한국의 두 배가 넘고 2021년 말 IMF 추계에 따르면 GDP 면에서 미국, 중국에 이는 세계 3위 경제대국이다.

햇볕정책의 첫 번째 성과는 금강산 관광이다. 김대중 대통령 임기 초인 1998년 11월 18일 시작한 금강산 관광은 김대중 대통령의 결기가 아니었으면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사건이었다. 미국에 물어보지 않고 독자적으로 저질러 버리는 식으로 결행하고 사후에 미국을 설득했다. 그렇게 결국 미국이 어쩔 수 없도록 만들어 끌고 갔던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미관계, 남북관계를 비롯한 국제정치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서 상당히 탄탄한 이론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이 직접 미국 대통령을 설득해다. 이론이 아무리 빵빵해도 엄두를 내어 미국 대통령과 마주한 그 자리에서 직접 설득하는건 또 다른 문제다.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 모두 결국 미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리고 주한미군 사령관한테 맡겨놨던 전시작전통제권이 돌아오면 비로소 명실상부한 군사주권이 생기는 거다.

그 기본은 ‘미국이 싫어하는 일도 나는 할 수 있다’는 배짱이다. 배짱이 있어야 한다. 미국과 관계가 나빠지면 우리가 위험해진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역량과 조건을 이미 갖추었는데도, 무엇이든 미국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뒤탈이 없다는 프레임에 갇혀 외교를 하는 사람들이 가끔 집권을 하고 정부를 끌고 간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할 일마저 미국이 이러쿵저러쿵하면 그건 간섭이 되지 않겠나. 미국이 내정 간섭을 하고 나서면 우리 여론이 나빠지고 반미 감정으로 연결될 수 있으니 미국도 손해다.

어떤 외교적 결정은 전략적 투자고 어떤 외교적 결정은 호구 잡힌 것일까? 이 둘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 바로 이해득실과 가능성을 계산한 거래였는가를 봐야 한다.

조선이 500년이나 갈 수 있었떤 데는 지부상소하는 선비들의 결기가 큰 힘이 됐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임금일지언정 목숨을 걸고 하는 신하들의 건의를 받아줄 도량이 있었고, 결국 이들의 상소를 채택하고 실시해 국가적으로 득이 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조선왕조가 끊어질 듯하면서도 500년을 이어간 것이다.

우리는 공부 좀 잘하면 무조건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그리고 돌아와 교수를 하든 관리가 되든 이 나라를 운영하는 지배계층으로 바로 들어간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앗으니 미국이 보조가 하는 방향으로 보고 미국중심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쪽으로 끌려간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불편한 진실을 의식하지 못한 채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제일 편하고 안전하다고 믿고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충직한 모범국가로 익숙하게 살고 있다.

남북관계가 이렇게 경색된 이유에는 하노이 회담이 깨지면서 한국에 대한 북한의 신뢰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미 2018년 11우러부터 남북관계는 다시 얼어붙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던 ‘한미워킹그룹’이라는 굴레 때문이다. 참 후회스러운 일이다. 천추의 한이 돼버렸다. 2018년 2월 9일 시작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의 봄 프로젝트는 2018년 9월 19일까지였다. 2019년 한 해 동안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와 관련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그나마 톱다운 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을 만나야 한반도의 봄이 다시 올 수 있을거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의 국제정치적 헤게모니와 한 몸인 군산복합체가 결국 기술적으로 사보타주하면서 애를 먹일 수 있다.

내가 이 긴 얘기를 하는 목적은 문재인 정부까지 우리 정부들이 걸어온 길을 쭉 뒤돌아보면서 현 정부 그리고 앞으로 들어설 대한민국 정부가 한미관계와 남북관계를 비롯한 국제관계를 어떻게 끌어가야 할지, 어떤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사례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우리가 앞으로 한미관계를 포함한 외교관계에서 어떻게 해야 자주적으로 그리고 국익을 챙기는 방향으로 일을 해나갈지 교훈 또는 시사점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처음부터 한미관계에서 미국의 입맛에 맞게 , 미국과 코드를 맞춰줌으로써 협조를 끌어내려고 했던 접근법이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고 본다. 처음부터 미국에게 우리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했다. 미국한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꼭 해야한다.

‘지금은 당신네가 인정하기 싫고 마음에 안 들지 모르지만, 우리가 관련된 문제에서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은 안 된다. 그동안에 우리 한국의 역대 정부 관계자들이 동맹을 강화한다는 명분 아래 미국 말을 너무 많이 잘 들어주다 보니까 결국에는 미국 뜻대로 끌려왔다 미국 당신들이 한국은 미국이 안 된다면 바로 입장을 바꿔서 순순하게 복종을 하는 나라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온 건 사실이다. 우리 선배들이 그렇게 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는 우리가 미국에 종속적인 입장을 취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시절이기 때문에 그랬던 거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한국은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바뀐 나라다. 2021년 7월 유엔 총회 산화 정무 간 기구 유엔무역개발회의에서 한국이 주로 개도국이 포함된 그룹 a에서 선진국으로 구성된 b로 지위가 변경됐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리에게 국제정치의 민낯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 문제를 더욱 긴박한 국면으로 옮겨놓았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본 북한은 더더욱 핵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을 거다. 그런 북한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는 윤석열 정부의 발등에 떨어진 과제다. 이 문제는 한미동맹 강화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우크라이나가 무방비 상태에서 러시아로부터 참혹하게 짓밟히는 걸 보면서 북한은 수교, 평화협정 그런 미국의 선의를 믿는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북한은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핵을 가진 상태에서 수교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을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그동안 놀고 있지 않았다.

7차 핵실험이 수소탄이면 미국이 절대로 가만 있지 않을 거다. 북한을 때려 죽인다는 얘기가 아니라 서둘러 협상을 할 거라는 얘기다. 그때는 미국이 어떻게든지 북한의 핵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즉 북한이 핵무기를 다른 나라에 팔지 않도록 북한과 협상을 할 거다. 지금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들이 많지 않나. 북한이 핵무기를 그런 나라한테 팔면 미국한테는 커다란 위협이 되지만 북한은 떼돈을 벌고 그 돈으로 경제를 살릴 수도 있다. 북한에게는 핵 확산이라는 또 다른 카드가 생기고 그 카드가 쓰을 때 한국을 낄 자리가 없을 것이다.

북한이 7차 핵실험에서 소형화 경량화된 핵폭탄 실험에 성공한다면 우리는 아주 어려워진다. 단거리 로켓에 탑재할 소형화된 핵폭탄이라면 그건 대남 위협용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원래 북한의 핵 전략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해 들어올 때 자위 수단으로 쓰겠다고 개발을 시작했지만,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협상용으로 쓸 요량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정권이 여러번 바뀌고 북핵 협상 전략도 자주 바뀌는 동안 북한은 대미 방어용 수단, 대미 협상용카드로 쓰던 핵무기의 용도를 실제 공격용으로 바꿨다.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은 미국이 북핵 문제 협상에서 전향적인 자세로 나오도록 설득해 협상을 시작하게 하고, 그 협상의 결과로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는 거다. 이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핵이 없는 남한이 핵을 가진 북한과 협상을 하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핵을 쓸 것처럼 위협하면서 우리의 양보를 요구할테니까.

북한은 우리 한국이 뭘 해주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겠다는 게 아니다. 미국이 수교를 약속하고 군사적으로 치지 않겟다는 평화협정을 체결해 주는 한편 미국의 영토에 북한의 대사관을, 북한의 영토에 미국의 대사관을 설립해야 핵과 미사일을 내려놓겠다는 거다.

우리는 결국 을의 입장이 될 수 밖에 없지만 비굴한 을이 되지 않을 길을 찾아야 한다. 궁긍적으로는 우리와 중국의 관계처럼 북한이 우리에게 의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 경제가 중국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니까 중국을 무시할 수 없지 않나. 경제를 비롯해 여러 부분에서 북한과 협력하면서 그 길로 가야 한다. 경제적으로 북한과 협력관계가 긴밀할수록, 즉 북한이 경제적으로 남한에 의존할수록 북한은 우리를 도발하기 어렵다. 북한과의 경제적 협력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제 성장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에서 군사적인 긴장 완화와 경제협력을 연결할 수 있다. 북한이 우리를 군사적으로 위협하면 그들이 먹고 사는 데 바로 타격이 올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남한과 얽히고 설키도록, 경제적으로 의존도가 높아지도록 구조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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