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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우의 끄적끄적

사회주의 디스토피아 1984를 읽고

by 귀찬우 2024. 3. 16.

나는 올해 목표 중 하나가 최대한 고전 중심의 책을 읽어보는 것이었다. 작년에 읽었던 자유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그린 '멋진 신세계'라는 책이 굉장히 인상깊었기도 했고,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디스토피아의 세계는 어떻게 그려질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기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북한에 대한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이 책의 모든 내용이 더 인상깊게 느껴졌던 것 같다. 

"외부세계는 물론 과거와도 접촉이 단절된 채 살아가는 오세아니아의 시민들은 마치 우주 공간에 사는 사람처럼 어느 쪽이 위고 어느 쪽이 아래인지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이런 국가를 통치하는 지배자들은 파라오나 카이사르를 능가할 만큼 절재적인 권력을 지닌다. 이런 지배자들은 자신의 추종자들 가운데 곤란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굶어 죽지 않게 할 의무가 있으며 경쟁국들과 똑같이 낮은 수준의 군사기술을 유지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일단 이런 최소한의 기준에 도달하고 나면 지배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모양대로 얼마든지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

"이 세 집단의 목표는 서로 완전히 대립된다. 상층계급의 목표는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중간계급의 목표는 상층 계급과 자리를 바꾸는 것이다. 하층계급에도 목표라는 게 있다면 -이들의 변함없는 특징은 고된 일에 너무 치여 살다 보니 일상생활 외의 다른 것들을 자각할 때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모든 차별을 철폐해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를 통틀어 주요 골자가 같은 투쟁이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오랜 기간 상층 계급은 권력을 단단히 쥐고 있는 것 같지만 조만간 이들이 스스로를 믿는 마음이나 효율적인 통치 능력 가운데 한 가리를 잃거나 아니면 두 가지 모두 잃게 되는 순간이 닥친다. 그때가 되면 이들은 자유와 정의를 위해서 투쟁하는 척 꾸며 하층 계급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중간계급에 타도당한다. 그런데 중간계급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하층계급을 옛날처럼 다시 노예로 몰아넣고 자신들은 상층계급이된다."

정말 인상깊었던 내용은 위의 글들처럼 이 세계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한다. 흔히 말하는 사상죄라는 죄목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기본이고, 그들에게 계속해서 당은 위대하고 신과 같은 존재라고 세뇌교육을 시킨다. 이 책을 읽으면서 권력이라는 것이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렇다면 권력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권력은 자기 스스로를 높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신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 자신의 힘과 능력과 과시하려는 마음,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우월한 마음을 가지고 싶은 마음 그것이 인간의 죄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욕은 사회주의 체제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서로 권력을 얻기 위해 다투고, 서로를 비난하는 모습을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인간들이 그리는 사회는 결국 디스토피아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다. 성경에서 인간들이 모이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창세기에 분명하게 나와있다. 서로 모여서 하나님과 같이 되자는 마음을 가지고 바벨탑을 건설했다. 그렇기에 우리가 디스토피아 가닌 유토피아의 세상을 꿈꾼다면 답은 예수그리스도다. 그분밖에 답이 없다. 우리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는 누구든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하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아를 죽이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당원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상경찰의 감시를 받는다. 심지어 혼자 있을 때에도 당원은 정말 오롯이 혼자라고 할 수 없다. 그가 어디를 가든, 잠을 자든, 깨어 있든, 일하든 쉬든, 욕실에 있든 침대에 있든 사전 경고가 없는 것은 물론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감시당할 수 있다. "

"당원은 사사로운 감정을 가져서도 안 되고 열정이 식어서도 안 된다. 그는 살아가는 내내 국외의 적과 국내의 반역자들을 끊임없이 광적으로 증오해야 하며 승리에 의기양양해야 하고 당의 권력과 지혜 앞에 열등감을 느껴야 한다. 빠듯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생활 때문에 생긴 불만은 의도적으로 외부로 돌리거나 '2분 증오'같은 장치를 통해 해소해야 하며, 회의적이거나 반항적인 태도를 유발할 수 있는 사색은 어릴 때 습득한 내면 훈련을 통해 사전에 없애야 한다. 이런 훈련에서 어린아이들에게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가장 초보적이고 간단한 단계는 신어로 이른바 '범죄 중단'이라는 것이다. '범죄중단'은 어떤 위험한 생각이든 막 떠오르려는 찰나 마치 본능처럼 그 생각을 뚝 멈출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이러한 능력에는 유사한 점들을 파악하지 못하고, 논리의 오차를 감지하지 못하며, '영사'에 해로운 것이라면 가장 단순한 주장조차도 오해하고, 이단적인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생각은 어떤 훈련을 통해서든 따분해하거나 물리치는 힘이있다."

"어떤 주장에 따르면, 과거의 사건들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글로 쓴 기록과 인간의 기억을 통해서만 존재한다고 한다. 이런 기록과 기억이 일치하는 것이면 뭐든 다 과거다. 당은 모든 기록은 물론 당원들의 마음마저 완전히 통제하고 있기 대문에 과거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이중사고는 한 사람이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 신념을 동시에 간직하고 두 가지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당내 지식층은 자신의 기억이 어느 방향으로 수정돼야 하는지 잘 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현실을 농락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중사고'를 발휘해 현실을 거스르지 않고 있다고 만족해한다. 이런 사고 과정은 의식적이어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충분할 만큼 정확하게 수행되지 않는다. 또 무의식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이라는 느낌이 들어 결국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이중사고'는 영사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당의 본질적인 행위는 정직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는 확고한 신념 속에서 의식적인 기만을 이용하여 행해지기 때문이다. 반드시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면서 그 거짓말을 진짜로 믿어야 하며, 불편해진 사실들을 잊어버렸다가 필요해지면 망각 속에서 다시 꺼내 꼭 필요한 동안만 기억해야 하고, 객관적 현실을 부정하면서도 그렇게 부정한 현실을 고려해야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당원이다. 그렇기에 위 글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수많은 제약이 있고, 감시를 당하고, 전혀 자유롭지 못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들의 삶이 얼마나 불행한지에 대한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식과는 너무나도 벗어나는 사회에 살아가는 그 사람들의 감정에 이입하면서 책을 읽었기에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범죄보다 더 큰 죄로 여겨지는 사상죄로 인해 수용소에서 극심한 고문을 받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 소설을 보면서 나는 북한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북한은 기독교 박해가 1위인 국가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김정은 가문이 신이라고 여기는 국가이기에 그것에 반하는 행동을 하거나 그러한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으면 죽을 수도 있는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들이 너무나도 존경스럽고, 그들을 위해 더 기도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의 총평은 크리스찬이면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특별히 우리가 품어야할 북한이라는 나라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더 좋을 거 같다. 그들이 당하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그 사회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삶일지, 거기서 더 나아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더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그곳에서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고통을 다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가 그곳에 대해 더 공부하고, 더 마음을 쏟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