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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우의 끄적끄적

사랑은 감정을 넘어서

by 귀찬우 2023. 10. 23.

 

  당신은 운명적인 사랑을 믿나요? 이런 질문을 하면 절반정도는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며, 나머지 절반은 ‘그런 것은 없다’라는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이 질문은 아름답고, 로맨틱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의 의미는 다른 곳에 있다. 보통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영화에서 보는 것과 같이 첫눈에 반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외모와 분위기만을 보고 좋아한다는 의미이다. 사회에서 살다보면 정말 믿던 사람들한테도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을 믿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인생을 맡길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인 것이다.

 

  사실 나도 오래전부터 이성을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 ‘끌림’에 많은 초점을 맞췄다. 그 사람의 외모가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에 가깝고, 끌리기만 하면 그 사람을 감정적으로 좋아하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성격과 가치관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지도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감정이 생긴 후라서 콩깍지가 끼여서 그 사람의 본모습을 모르고 좋아하게 된 경우인 것이다. 그 사람은 나중에 내가 느끼기에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고, 다행히 마음을 접은 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건이 있은 후로 나는 ‘어떠한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적으로 던졌다. 다행히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사랑하다, 살아가다(폴 밀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이야기한다. ‘사랑을 생각과 분리시키면 사랑이 이상해지고 얄팍해진다. 그런 사랑은 결국 비참해져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린다.’ 사랑을 생각과 분리시킨다는 이야기는 감정에 충실한 사랑을 한다는 의미이다. 감정적으로 사랑하면 사랑이 이상해지고 얄팍해진다. 감정적인 사랑을 하면 결국 비참해져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린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이 말에 동의 한다. 사랑이 감정에만 치우치면 객관적으로 그 사람을 알지 못한 경우가 생긴다. 또한 연애를 하다가 설레는 감정이 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헤어짐의 이유를 당연시하는 경우가 생긴다. 특히 감정을 중시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감정에만 초점을 맞추게 한다. 이로 인해 감정에 집중하다보니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타격을 입게 되며, 회복하지 못할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랑은 감정이 아니다. 사랑의 요소 중 하나가 감정인 것이지 사랑과 감정은 같은 것이 아니다. 평생 한 사람한테 설레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가능할까? 솔직하게 불가능하다. 설레는 감정을 사랑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한사람만 평생 사랑할 수 없다. 인간의 사랑의 감정은 식을 수밖에 없고,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감정으로부터 오며, 설레는 감정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이처럼 지금 이 사회 속에서 팽배하게 퍼져있는 사랑이야기는 문제가 있다. 물론 감정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 만나서 연애시작 단계에서는 설레는 감정이 사랑의 많은 요소를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 감정이 사랑을 더 풍성하게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오래 만날수록 익숙해지고 설레는 감정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여기서 설레지 않는다는 이유로 헤어짐을 선택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선택이다. 그렇다면 감정적인 사랑에는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을까?

 

  감정적인 사랑은 너무나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로 감정적인 사랑은 그 감정 상태를 처음과 똑같이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당신이 결혼을 해서 10년의 부부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처음에 연애할 때의 감정상태가 결혼 후 10년 이상 유지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랑의 감정을 설렘이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 그렇다. 그들의 설렘은 식어갈 것이고,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의심할 수도 있다. 설렘의 감정이 사라진 것이 사랑하지 않는 다고 여기면 말이다. 어쩌면 10년도 되기 전에 그들의 감정은 식을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똑같은 감정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감정적인 사랑은 위험한 것이다. 둘째로, 감정적인 사랑은 가정을 망칠 수도 있다. 만약 설레는 감정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 식어버린 부부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부부는 한 가정을 이루었어도 설레는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배우자를 놔두고, 설레는 감정을 만들어 줄 다른 상대방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스릴과 설렘을 즐기다가 아이와 배우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가정이 파탄날 수도 있다. 현실세계의 ‘부부의 세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너무 극단적인 예시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감정적인 사랑은 위험하다. 셋째, 사랑이 성장하지 못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함께 하는 것이다. 함께 서로를 깊이 알아가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과정이다. 하지만 감정적인 사랑을 따르는 사람은 성숙한 사랑을 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사랑은 처음에는 설렘이 주를 이루었다면, 그 후에는 서로 닮아가며,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가는 성장을 겪는다. 이러한 사랑을 경험하려면 감정적인 사랑을 넘어서야함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렇다면 어떠한 사랑을 해야할까?

 

  나는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 내용에 동의한다. 바로 헤세드의 사랑을 책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헤세드’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은혜(긍휼, 자비)라는 의미로 해석이 되다. 이 사랑은 기독교가 믿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다. 인간은 참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이다. 완벽한 사랑을 할 수 없고, 연인관계의 계속적인 사랑을 하는 것도 엄청 어려워한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의 사랑을 따라야한다. 당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의지적으로 사랑하기로 결단해야하는 것이다. 감정이 따라오지 않는다고, 예전과 같은 마음이 아니라고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로 선택하고, 결단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해야 할 것이다. 물론 당신을 망치는 사랑이라면 고려해 봐야할 부분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은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상대방을 위해서 기도하고, 상대방을 위해서 헌신해야 할 것이다. 사랑은 감정을 넘어서 의지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이러한 의지적 헤세드의 사랑을 실천한다면 당신의 사랑의 관계는 나날이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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